2010년 12월 23일 목요일

하필이면...

하필이면…

하필이면,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심판을 받으실 때,
갈릴리에 있어야 하는 헤롯이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어서(눅 23:7)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수 있었다.
만일 헤롯이 갈릴리에 있었으면, 빌라도는 그를 헤롯에게 보내기 원하였기에, 재판을 지연되었을 것이고, 결국 유월절을 지난 후에 십자가처형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으셔야 했다.
반드시 그 날 돌아가셔야 했다.

하나님의 역사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하필이면,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길목을 지나고 있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가실 수 있게 도왔다.
예수님은 나무에 달리셔야 했다(신 21:23).
구레네 시몬이 그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리시는 걸음을 도왔다.

하필이면,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 예수님 편에 서 있어서
예수님을 장사지낼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은 부자의 무덤에 묻히셔야 했다(사 53:9).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 예수님의 죽음 이후를 담당하였기에, 예수님은 부자의 무덤에 장사지내신 바 되게 되었다.

하나님의 역사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하필이면,
나는 이 부모를 만나고, 이 가족을 만나고, 이 아내를 만나고, 이 딸들을 만나고, 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이 동역자들을 만나고, 이 교회를 만났다.

하나님의 인도와 역사하심이 "하필이면" 이렇게 함께 하시는 걸음에, 감사를 느낀다...

2010년 12월 8일 수요일

시각의 차이

누가복음 22장 6절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So he consented and sought an opportunity to betray him to them in the absence of a crowd. (Luk 22:6 ESV)

가룟유다의 시각에는 예수님께서 가장 취약하다고 판단하는 시간이 바로 예수님의 기도의 시간이었다. 예수님은 정기적으로 기도하시면서, 홀로 계셨는데, 그 때를 “무리가 없을 때”로 간주한 것이다. 그래서, 유월절만찬 뒤에, 예수님의 기도의 장소로 나아가 예수님이 가장 무능력해 보이는 시간에 예수님을 덮친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은 그의 인생의 정점을 향해 가고 계셨고, 그래서 가장 최선의, 최고의, 그리고 최장의 기도를 드려야 하는 시간을 만끽하고 계셨다. 예수님은 이 기도의 시간을 통해서 몸은 지쳐 계실 수 있지만, 사람들도 없었고, 무방비 상태처럼 보였으나, 겟세마네동산에서 밤을 새시면서 기도하신 시간을 통해서 가장 완벽하게 준비되신 상태에 계셨다. 바로 그 상태에서 십자가처형의 걸음을 시작하신 것이었다.

유다가 예수님의 가장 약한 상태라고 판단하였던 "무리가 없을 때"가 예수님께는 가장 강하신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고통과 치욕의 길을 걸으실 수 있었다. 예수님의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승리"로 장식하실 수 있으셨다. 마지막까지 털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어린양같이… 자신에게 침을 뱉고 뺨을 떼리며 온갖 모욕을 일삼는 이들을 향해… “주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십자가 위에 매달려 고통하시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구원을 완성해 나가시는 과정을 호흡처럼 느끼시면서 예수님께서 감당하셔야 하는 "십자가"영역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신 것은 (물론, 삼일 후에 하나님께서 감당하셔야 하는 "부활"영역을 환상적으로 마무리하셨다) 바로 이 기도의 무장의 완벽성을 증명하는 사건들이었다.

유다가 예수님의 가장 약한 상태라고 판단하였던 "무리가 없을 때"가 예수님께는 가장 강하신 상태였던 것이다.

2010년 12월 3일 금요일

누가복음 11장 28절을 거듭 읽으면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눅 11:28 ) But he said, "Blessed rather are those who hear the word of God and keep it!"
(Luke 11:28 ESV)

이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예를들면, 마태복음 5장)에서 정의하여 주신 "복있는 자"의 개념 이외의 "복있는 자"의 새로운 개념인가?

그렇지 않다. 먼저는, 성경에서 "복있는 자"를 정의할 때, 하나님의 말씀과 불가분의 연관을 지어 설명하는 것이 일관되게 변함없이 유지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신 28:2, 잠 16:20, 시편 1편, 계 1:3; 22:7 등등).

둘째로,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에서 정의하신 "복있는 자"도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이루어 나가게 될 삶의 모양 내지는 열매들이 된다(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그리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자). 그러므로, 오늘 말씀하신 "복있는 자"의 정의는 성경을 통해 계시되어진 "정의"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며 일종의 요약문구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복이다. 듣기를 원하여도 듣지 못하는 자들을 생각한다면, 매 주일, 그리고 주중에 말씀을 듣고 공부하는 것 그 자체가 아주 큰 복임에 틀림없다. 이제는 너무나 흔하게 발에 채이듯 존재하는 것 같아 말씀을 듣는다는 것의 진정한 가치가 심하게 훼손되어 있음을 직시하는 것은 더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복이다)이 진지하게 되새김되어야 하는 상황에 있는 것이다.

둘째로, 그 말씀을 들은대로 순종하여 나아가는 것이 복이다. 듣기는 들어도 순종하지 않으면 주초를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려보자(누가복음 6:48~49).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indicative) 지키는 것은(imperative)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거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지키는 것을 언급하시는데 있어서 "듣고"라는 동사를 넣으셨을 것이다. 말씀을 들은 이후에 지킬 수 있는 지혜와 힘과 열심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from Indicative to Imperative).

그래서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키는 것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다음의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나는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인가?"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데 (요한일서 5:3,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그렇게 보았을 때, 우리는 말씀을 순종하는 삶과 연관된 다음의 질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인가?"

그런데, 오늘 누가복음 11장 28절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 즉,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 다시 말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일진대, 그 말씀이 우리의 삶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일게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와 같은 맥락의 말씀일테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피조물 속에서 이루어져 나아가는 것에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 1장에 드러나는 창조네러티브를 통해서 볼 때,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께 기쁨(영광)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의 결과를 보면, 하나님께는 기쁨(영광)이고 우리에게는 "복"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어지는 열매맺는 그리스도인의 "복된" 삶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열매맺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 곧,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삶의 이유를 "의무"(imperative)에서 발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indicative) 안에서 발견한다 (로마서 6:30). 그렇다고 한다면, 구원의 은혜 안에서 우리는 그 은혜를 인하여 감사하는데 나아가고 그 감사를 근거로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 하는 것이다. 결국, 감사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감사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서 그렇게 한 것 뿐인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에 대한 또 다른 그리고 새로운 은혜의 "복"(또 다른 감사의 이유)을 부어주신다는 사실이다.

형용할 수 없는 감사가 홀연히 가슴 속 뇌리를 파고든다…

WTT Psalm 65:4 דִּבְרֵ֣י עֲ֭וֹנֹת גָּ֣בְרוּ מֶ֑נִּי פְּ֜שָׁעֵ֗ינוּ אַתָּ֥ה תְכַפְּרֵֽם׃   BGT Psalm 64:4 λόγοι ἀνομιῶν ὑπερεδυνάμωσαν ἡ...